Aims & Scope

Journal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Korea - Vol. 55 , No. 2

[ Article ]
Journal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Korea - Vol. 55, No. 2, pp. 165-178
Abbreviation: J. Geol. Soc. Korea
ISSN: 0435-4036 (Print) 2288-7377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Apr 2019
Received 19 Feb 2019 Revised 19 Mar 2019 Accepted 28 Mar 2019
DOI: https://doi.org/10.14770/jgsk.2019.55.2.165

제주도 화산활동에 관한 역사 기록의 이해
고기원1 ; 전용문2, ; 박준범3 ; 박원배4 ; 문수형1 ; 문덕철1
1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품질연구본부
2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3미육군극동공병단 지반환경공학부
4제주연구원 환경도시연구부

Understanding of Historical Records about Volcanic Activities in Jeju Island, Korea
Gi Won Koh1 ; Yongmun Jeon2, ; Jun Beom Park3 ; Won Bae Park4 ; Soo Hyoung Moon1 ; Deok Cheol Moon1
1Water Resource Research Center, Jeju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 Development Corporation, Jeju 63345, Republic of Korea
2Jeju Heritage Management Division, Jeju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 Jeju 63341, Republic of Korea
3Geotechnical and Environmental Engineering Branch, US Army Corps of Engineers Far East District, Republic of Korea
4Economy Environment Urban Division, Jeju Research Institute, Jeju 63147, Republic of Korea
Correspondence to : +82-64-710-6027, E-mail: ymjeon74@korea.kr


초록

15~19세기 역사서 및 고문헌 25편에 실린 제주도의 화산분화와 지진 및 해일 등에 관한 기록을 화산학적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발생한 화산활동 기록은 고려 목종 5년(1002년)과 목종 10년(1007년)이며, 또 다른 시기의 화산활동은 기록된 적이 없다. 「고려사(1451년)」 및 「고려사절요」(1452년) 이외의 문헌들은 원사를 전재(前載)하는 과정에서 오기(誤記)와 함께 저자의 사견이 서술되어 있어 이들 문헌을 인용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고려 목종 5년 6월의 기록은 중산간지역에서 하와이안 분화의 틈분화(fissure eruption)가 일어나 용암이 네 군데서 솟아오른 현상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고려 목종 10년의 기록은 수중화산분화 현상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화산분화 위치는 현재 형제섬이거나 해저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瑞山(서산)”은 위치나 지명 또는 특정한 산의 이름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산(山)이 새롭게 생겨난 것을 복되고 길(吉)한 징조의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 해석된다. 1707년 10월 29일~1708년 1월 21일까지 9차례의 지진과 한 차례의 해일은 제주도 혹은 그 주변에서의 화산활동과 무관하며, 당시 일본에서 발생한 Hoei대지진(宝永地震)과 연관된 것으로 해석된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records of volcanic eruptions, earthquakes and tsunamis of Jeju Island, listed in the historical books and 25 ancient documents between the 15th and the 19th centuries from a volcanological perspective. The volcanic activities most recently occurred on Jeju Island were in 1002 and 1007, the 5th and the 10th year of King Mokjong of Goryeo Dynasty, respectively. When citing these documents other than Goryeosa (1451) and Goryeosajeolyo (1452), special cautions are required as the author's thoughts may have been reflected along with the mistakes in the process of recounting a sequence of historical events. The records in June of the 5th year of King Mokjong of Goryeo give details of what seems to be the fissure eruption of Hawaiian volcanism occurred in the mountainous areas, resulting in lava rising from four places. The records of the 10th year of King Mokjong of Goryeo exhibit the phenomenon of a submarine volcanic eruption, the location of which is likely to be in either Hyeongjaeseom Islet or the sea floor. "Seo-san" refers to a newly formed mountain, a representation of an auspicious sign rather than a specific location or a mountain. Nine earthquakes and one tsunami registered from October 29, 1707 to January 21, 1708, were unrelated to the volcanic activities on and around Jeju Island but the results of dynamic and static stresses generated by the 1707 Hoei Earthquake in Japan.


Keywords: 5th and 10th year of King Mokjong of Goryeo, Seo-san, volcanic eruptions, Jeju Island
키워드: 고려 목종 5년, 고려 목종 10년, 서산(瑞山), 화산분화, 제주도

1. 서 론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국제화산프로그램은 제주도 한라산을 11세기에 두 번(1002년과 1007년)에 걸친 사면분화(flank eruptions) 이력을 가지고 있어 활화산으로 분류하고 있다(Smithsonian Institution, 2019, https://volcano.si.edu/). 이는 「고려사(1451)」등의 사서와 「탐라지(耽羅誌), 1653, 이원진)」등의 고문헌에 고려 목종 5년(1002년)과 목종 10년(1007년)에 제주도에서 일어난 화산분화 사건 기록에 근거한다.

제주도는 약 1.80 Ma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으로서(Koh et al., 2013; Sohn et al., 2015; Ahn, 2016), 분화시기를 달리하는 400여개에 달하는 많은 독립 소화산체(분석구, 응회구, 응회환)들이 산재해 있어 역사기록에 대한 화산학적 해석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의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주도의 화산분화 기록에 대한 지질학적해석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도되어 왔다(Nakamura, 1925; Kawasaki, 1928; Haraguchi, 1930; Koh et al., 2008a, 2008b; Brenna et al., 2015a, 2015b; Ahn, 2016). 화산활동이 빈번한 일본의 경우 역사시대 화산분화에 대해 역사서와 고문헌 기록 등을 통해 분화위치, 분화방식, 분화범위, 활동기간 등의 다양한 정보를 얻어왔다(Hayakawa and Hideko, 1998; Kudo and Hoshizumi, 2006). 그러나 우리나라의 화산분화에 대한 역사기록은 백두산(참고: Yun, 2013)과 제주도에 국한되어 있고, 특히 제주도에서의 역사기록에 대한 지질학적 해석 연구는 거의 이루어진 바가 없다.

한편, 탐라지도병서(1709)를 제외하고는 사서 등의 문헌과 이전에 수행된 연구에 목종 5년 6월(1002년)의 기록이 비양도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양도가 이 때 형성된 섬으로 정설화되어, 비양리 포구에는 비양도 탄생 천년 기념비가 2002년 7월에 세워졌다. 또한, 일부 고문헌에는 화산분화 위치가 특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문구들이 추가됨으로써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음백과사전, 나무위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사전, 위키백과 등).

따라서 본 연구는 1451년에 편찬된 「고려사」부터 1800년대 말까지 출간된 문헌에 기록된 화산분화와 지진에 관한 기록을 발췌하고, 이들 기록의 내용을 화산학적 관점에서 화산분화 시기 및 위치, 분화현상 및 화산체의 규모 등에 대해 해석하였다.


2. 사서 및 고문헌 기록 검토

본 연구에서는 총 21편(지진 및 해일 관련 문헌 제외)의 사서와 고문헌의 기록을 발췌하여 검토하였다. 이들 문헌을 발간시기별로 보면, 15세기에 발간된 것이 5편, 16~17세기 6편, 18~19세기 10편이며, 문헌의 기록과 서술내용은 부록 1에 첨부하였다.

2.1 화산분화 시기

역사시대 제주도의 화산분화 사건을 기록한 문헌 중 가장 오래된 「고려사(1451, 高麗史 卷 55 志 卷第九 五行三)」에는 목종 5년(壬寅) 6월과 목종 10년(丁未)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고, 5개월 후에 발간된 「고려사절요(1452, 高麗史節要 卷二 穆宗宣讓大王)」도 「고려사」의 내용과 동일하다(표 1). 그러나 「동국통감(1485)·남천록(1679)·천동상위고(1708)·해동역사(조선후기)」에는 목종 10년의 사건만 기록되어 있고, 「탐라지도병서(1709)」에는 목종 5년에 대해서만 서술되어 있다. 특히, 「천동상위고」는 목종 10년 6월로 서술하고 있으나 「고려사절요」에는 6월에 탐라와 관련된 기사가 없으며, 「증보문헌비고(1770)」에도 목종 10년 10월로 기술되어 있으나 역시 탐라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 「남사록(1601)」과 「탐라지초본(1843)」의 서술 내용은 목종 10년과 거의 동일하나, 목종 16년(1013)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목종이 서기 997~1009년까지 12년간 재위했음을 감안하면 이들 문헌의 ‘목종 16년’은 잘못 서술(誤記)된 것으로 보인다.

Table 1. 
Year of volcanic events recorded in the literature.
Literature Year of Event
Goryeo Dynasty
5th year of King Mokjong May AD 1002 10th year of King Mokjong AD 1007 16th year of King Mokjong AD 1013
고려사(1451)
고려사절요(1452)
세종실록지리지(1454)
동국통감(1485)
동국여지승람(1486)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남사록(1601)
지봉유설(1634)
탐라지(1653)
동국여지지(1656)
남천록(1679)
천동상위고(1708) ○(6월)
남환박물(1702)
탐라지도병서(1709)
성호사설(1740년 경)
증보문헌비고(1770) ○(10월)
제주읍지/제주대정정의읍지(1793)
탐라지초본(1843)
대정군고지(1899)
해동역사(조선후기)

비록 일부 문헌(동국통감 등)에는 목종 5년의 사건은 아예 언급이 되어 있지 않고, 목종 10년의 사건만 서술되어 있음이 확인되지만, 15세기의 원서(原書) 기록으로 미루어 목종 5년(1002년) 6월과 목종 10년(1007년)에 제주도에서 화산활동이 발생한 것은 분명하다. 이 두 번의 사건 이외 더 이상 제주도의 화산활동을 기록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제주도는 지난 1,000년간 휴지기에 있다.

2.2 화산활동 현상

「고려사」 및 「고려사절요」에 기록된 화산활동의 현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① 목종 5년 6월, 산에 네 군데 구멍이 열려(山開四孔) 붉은 물이 솟아나오더니 5일이 지나서야 그쳤는데(赤水湧出五日而止), 그 물은 모두 와석이 되었다(其水皆成瓦石).
  • ② 목종 10년, 상서로운 산이 바다 가운데서 솟아났는데(瑞山湧出海中), 탐라사람들이 말하기를 산이 처음 나올 때 구름과 안개로 깜깜해지고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진동이 있었고, 7일 밤낮으로 계속되었다(羅人言山之始出也雲霧晦冥地動如雷凡七晝夜).

그러나, 목종 5년 사건에 대한 기록의 내용은 문헌 간에 큰 차이가 있다(표 2). 「고려사·고려사절요·세종실록지리지·증보문헌비고」는 “山開四孔(산개4공)”으로 서술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문헌에는 모두 “瑞山湧出海中(서산용출해중) 또는 有山湧海中(유산용해중)”로 ‘바다 가운데서 산이 솟아났다’고 서술되어 있다. 다시 말해, 원서에 없는 ‘바다(海)’가 추가되어 동일한 사건의 현상에 대해 전혀 다르게 서술되어 있다. 목종 5년 6월에 발생한 사건의 현상이 「동국여지승람·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바다(海)”가 추가된 이유에 대해 현재로서는 더 이상 규명할 수는 없으나, 기록의 내용은 일반적인 수중 화산폭발 현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Table 2. 
Comparison of records on the phenomenon of volcanic events.
Literature phenomenon of volcanic events
Goryeo Dynasty
5th year of King Mokjong May AD 1002 10th year of King Mokjong AD 1007 16th year of King Mokjong AD 1013
고려사(1451 AD)1 山開四孔 瑞山湧出海中
고려사절요(1452 AD)1 山開四孔 瑞山湧出海中
세종실록지리지(1454) 山開四孔 有山湧出海中
동국통감(1485) 有山于耽羅海中
동국여지승람(1486) 山湧海中 瑞山湧出海中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有山湧海中 瑞山湧出海中
남사록(1601) 有山湧海于耽羅海中
지봉유설(1634) 瑞山自海中湧出11
탐라지(1653) 有山湧海中 瑞山湧出海中
동국여지지(1656) 有山湧海中 瑞山湧出海中
남천록(1679) 瑞山湧出海中
남환박물(1702) 有山湧海中 瑞山湧出海中
천동상위고(1708) 瑞山湧出海中
탐라지도병서(1709) 瑞山湧出海中
성호사설(1709년경)
증보문헌비고(1770) 山開四孔 耽羅海中
제주읍지/제주대정정의읍지(1793) 山湧海中 瑞山湧出海中
탐라지초본(1843) 有山湧于耽羅海中
대정군고지(1899) 有山湧出海中
해동역사(조선후기) 有山湧出海中
1 The year in italics refers to the time of its publication.

한편, 목종 10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고려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문헌에 “瑞山湧出海中(서산용출해중)” 또는 “有山于耽羅海中(유산우탐라해중)”으로 서술되어 있어 당시 바다에서 7일 동안 이어진 화산분화에 의해 산이 만들어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즉, 화산분화에 의해 이전에 없었던 산이 바다에서 새로 생겨난 것으로 해석된다.

2.3 화산분화 위치(지명)

사서와 고문헌의 목종 5년 6월과 목종 10년 기록으로부터 사건이 발생한 위치(지명)를 파악할 수 있는지는 관심이 대상이다. 21편의 문헌에 서술된 사건 발생 위치(지명)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표 3).

Table 3. 
Location or geographic name of volcanic events recorded in the literature.
Literature Location of volcanic event
Goryeo Dynasty
5th year of King Mokjong May AD 1002 10th year of King Mokjong AD 1007 16th year of King Mokjong AD 1013
고려사(1451 AD)1 耽羅 耽羅 瑞山
고려사절요(1452 AD)1 耽羅 耽羅秦 瑞山
세종실록지리지(1454) 耽羅 耽羅
동국통감(1485) 耽羅
동국여지승람(1486) 瑞山, 今屬大靜縣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瑞山 瑞山, 今屬大靜縣
남사록(1601) 飛揚島
지봉유설(1634) 瑞山, 今屬大靜縣
탐라지(1653) 瑞山 瑞山, 今屬大靜縣
동국여지지(1656) 瑞山 瑞山, 今屬大靜縣
남천록(1679) 瑞山, 今屬大靜縣
남환박물(1702) 蓋波(가파도)
천동상위고(1708) 耽羅 瑞山
탐라지도병서(1709) 瑞山 卽 飛揚島
성호사설(1709년경) 飛颺島一名瑞山
증보문헌비고(1770) 耽羅 耽羅
제주읍지/제주대정정의읍지(1793) 瑞山 瑞山, 今屬大靜縣
탐라지초본(1843) 飛揚島
대정군고지(1899) 號瑞山今稱軍山
해동역사(조선후기) 瑞山, 謹接山在㫌義縣
1 The year in italics refers to the time of its publication.

  • ① 「고려사·고려사절요·세종실록지리지·증보문헌비고」에는 목종 5년 6월에 “耽羅(탐라)”가, 목종 10년 기록에는 “耽羅(秦) 瑞山 [탐라(주) 서산]”으로 서술되어 있다.
  • ② 「동국여지승람·신증동국여지승람·탐라지·동국여지지」에는 목종 5년 6월에 “瑞山(서산)”이, 목종 10년에는 “今屬大靜縣(금속대정현)”의 문구가 추가되었다.
  • ③ 목종 5년의 사건에 대해 「남환박물」은 가파도로, 「탐라지도병서」는 비양도로 서술하였다.
  • ④ 「남사록, 성호사설, 탐라지초본」에는 목종 10년을 비양도로 서술하였다.
  • ⑤ 「대정군고지」는 서산(瑞山)을 군산(軍山)이라 하고, 목종 5~10년 사이에 제주목 역내(域內)에서도 서산이 생겨났다고 서술하였다.
  • ⑥ 「해동역사」에는 제주사람들은 목종 10년 기록의 서산은 제주 남쪽 바다를 말하며, 정의현에 위치(謹接山在㫌義縣)한다고 서술되어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2회에 걸쳐 일어난 사건에 대해 해석이 구구한 것은 사건에 관한 원서 기록이 구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며, 이에 대한 추가적인 사항은 고찰 부분에서 언급하겠다. 이상 6가지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목종 5년 6월의 기록은 위치를 특정하지 않고 있음을 고려할 때, 조선 숙종시대에 만들어진 「남환박물(이형상)·탐라지도병서(이규성)」에 서술된 가파도와 비양도는 저자의 사견(私見)을 밝힌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둘째, 「남사록, 남환박물, 탐라지도병서, 성호사설, 탐라지초본, 대정군고지」를 제외하면, 목종 10년 사건 발생 위치를 특정하고 있지 않지만, 「동국여지승람·신증동국여지승람」등 은 서산이 대정현에 속하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어 그 의미에 대한 심층적 고찰이 필요하다.

2.4 화산체의 규모

목종 5년 6월과 목종 10년 기록에 나타난 사건의 규모(화산체의 규모)는 당시 보고자의 목측 혹은 주관적인 구술에 의한 것이므로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목종 5년 6월의 기록에는 화산의 규모를 짐작할 만한 내용이 전혀 없지만, 목종 10년의 기록은 보다 구체적이다. 즉, “산의 높이가 백여장(山高可百餘丈 ; 참고, 丈(장)은 3.58 m이고, 리(里)는 약 393 m임)” 이고 “둘레가 사십여리(周圍可四十餘里)” 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오늘날 단위로 환산하면 산의 높이는 약 300 m, 둘레는 약 16 km 규모이다. 「남환박물」은 비양도의 둘레가 10리에도 미치지 않아 대상에서 배제되며, 둘레가 40리 되는 섬은 가파도(蓋波島)와 우도 밖에 없고, 대정현에 속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목종 10년의 서산(瑞山)은 가파도라 서술하였다.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지도 정보에서 제주도 주변에 위치한 섬 둘레를 측정해 보면, 비양도 약 3 km (높이 114 m)이고 가파도와 마라도는 약 4 km (높이 각각 20 m와 39 m), 차귀도는 약 2.5 km (높이 약 30 m), 우도 약 17 km (높이 약 133 m) 정도이다. 따라서, 목종 10년 사건 기록에 필적할만한 규모(높이 약 300 m, 둘레 약 16 km)의 섬은 제주도 주변에 존재하지 않는다.

2.5 지진 및 해일 등에 관한 기록

지진과 해일은 화산폭발에 수반되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서와 문헌에 수록된 제주도 지진 및 해일에 관한 기록을 정리하였다(표 4). 1455년부터 1708년까지 총 14회의 기록이 있으나, 역사문헌에 사용된 시각이나, 지역, 방향 등에 관한 표현은 현재와 많은 차이가 있다(Korea Meteorological Administration, 2012). 1707년 12월 4일 “海中出火(해중출화)”라는 기록과 더불어 10월 29일을 포함하여 6회의 지진과 한 번의 해일 기록이 존재한다. 이 당시 일본에서는 동해지방에 ‘Hoei대지진(宝永地震)’으로 일컫는 M 8.7~9.5의 큰 지진이 10월 28일 발생하였고, 49일 후에 후지산 남동사면에서 큰 분화가 일어났다(Miyaji and Koyama, 2007). 호에이 대지진과 해일 및 후지산 화산폭발은 당시 일본 내 사망자 2만 명 이상, 붕괴된 가옥은 6만 호, 해일로 유실된 가옥이 2만 호에 달하는 엄청난 피해를 기록하였다(Wikipedia, 2019, https://ja.wikipedia.org/wiki). 이 대지진에 의해 유발된 해일은 우리나라 남해안과 제주도 해안까지 도달하였다(Kim et al., 2016). 따라서, 1707년 10월 29일부터 1708년 1월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9차례의 지진(해일 1회)은 일본에서 발생한 Hoei 대지진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쉽게도 목종 5년 6월 및 목종 10년의 화산분화 기록과 연관 시킬만한 지진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Table 4. 
Historical records of the earthquake and tsunami on Jeju Island.
Literature Year/Month/Day1 Descriptive Record
端宗實錄12卷 1455. 1. 15 全州·益山·龍安·興德·茂長·高敞·靈光·咸平·務安·羅州·靈巖·海南·珍島·康津·長興·寶城·興陽·樂安·順天·光陽·求禮·雲峯·南原·任實·谷城·長水·淳昌·金溝·咸悅·濟州·大靜·旌義, 垣屋頹毁, 人多壓死。降香祝, 行解怪祭。
仁祖實錄44卷 1643. 4. 23 " 時白曰: "庚辰海砲之異, 尤可駭也。" 上曰: "海島地震而然歟?" 時白曰: "海震之變也。聲如大砲, 自濟州達于平安道云矣
顯宗實錄18卷 1670. 11. 15 丁亥/濟州地震。有聲如雷, 人家壁墻, 多有頹圮者。
增補耽羅誌古今事蹟 1705. 7. 25 肅宗大王 三十一年乙酉六月初五日地震
1707.
3. 5
10. 29/11. 3
11. 24/12. 2
12. 4
肅宗大王 三十三年丁亥
二月初二日両次地震
十月初五日, 初十日 地震, 海溢
十一月初一日, 初九日, 地震
十一日海中出火
1708.
1. 2/12/16/21
肅宗大王 三十四年戊子十二月初十日, 二十日, 二十四日, 二十九日, 連日地震
1 The lunar dates have been converted to solar ones.


3. 토 의
3.1 화산분화 시기 해석

제주도에서 발생한 1002년과 1007년(목종 5년과 목종 10년)의 사건은 약 450년이 지난 조선시대인 1451년 편찬된 「고려사」에 최초로 기록되었다. 「고려사」지(志) 7권 오행 서문에는 “사관[史氏]이 기록한 당시의 재이(災異)와 상서로움에 근거하여 「오행지(五行志)」를 짓는다(今但據史氏所書當時之災祥, 作五行志)”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고려사」지(誌)의 기술원칙은 사실을 분류해 싣는 『原史』에 의거한다는 것과 「고금상정예문」·「식목편수록(式目編修錄)」 및 여러사람의 잡록을 취했다. 또한, 지(誌)에는 각기 그 서문이 있고, 다시 세부 내용별로 항목을 구분해 저술하였다. 항목별로는 먼저 연월이 없는 일반적인 기사를 싣고 뒤에 연월이 기록된 구체적인 역사 사실을 기술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2019), http://encykorea.aks.ac.kr).

「고려사」가 편찬된 다음해인 1452년에 완성된 「고려사절요」의 내용도 「고려사」와 동일하다. 따라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기록은 1차 사료 즉, 원서(原書 또는 原史)이며, 이를 전재(前載)한 「동국통감」이나 「남사록」등의 문헌은 2차 사료에 해당한다. 「천동상위고」와 「증보문헌비고」에 목종 10년 6월과 10월, 「남사록」과 「탐라지초본」에 목종 16년으로 서술된 것은 집필과정에서의 오기(誤記)로 해석된다.

고려시대 제주도의 행정체계를 보면, 고려 태종 8년(925년)에 탐라는 고려의 조공국이 되어 성주(탐라국왕)에 의한 지배체계가 이어지다가 숙종 10년(1105년)에 탐라군(耽羅郡)으로 고려의 통치권에 포함되었다. 고려는 제주가 탐라군으로 편입되기 이전에 구당사(勾當使; 고려시대 지방에 파견한 외직(外職)의 하나로서, 선종 7년(1090) 2월 기록에 탐라 구당사가 성주의 사망에 대한 보고 내용이 수록되어 있음)를 두어탐라국 내의 민정을 살핌과 아울러, 탐라국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을 조정에 보고·처리하게 하도록 하였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The Digital Local Culture Encyclopedia of Korea, 2019), http://www.grandculture.net). 또한, 고려시대는 춘추관(처음에는 史館)을 두고 관원으로 사관(史官)을 두어 사초(史草)를 춘추관에 보관했으며, 춘추관과 사관의 제도는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2019), http://encykorea.aks.ac.kr).

이와 같은 점들을 감안 할 때, 사건이 발생한 후 450여년이 지난 후 「고려사」에 수록되었다 할지라도, 목종 5년과 목종 10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 보고된 문건의 관리에는 문제가 없었으리라 추정된다. 특히, ‘산에 네 군데 구멍이 열려 붉은 물이 5일간 솟아나고(목종 5년), 엄청난 진동과 함께 바다에서 산이 솟아난(목종 10년)’ 사건은 당시 탐라인에게는 처음 목격하는 아주 놀라운 사건이었고, 태풍이나 지진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탐라성주 또는 구당사는 사건개요를 즉각적으로 조정에 보고(狀啓)하였을 것이다. 특히, 목종 10년 사건의 경우, 탐라에서 발생한 사건을 보고받은 왕(穆宗)이 전공지(田拱之)를 현지에 내려 보내 상황을 살핀 후 보고하도록 조치하였고, 전공지가 현지조사 결과를 왕에게 보고까지 한 사항이 서술되어 있다. 장계(狀啓)는 통상적으로 “壬寅 ○月 ○日”과 같은 형식의 사건 발생일자와 개요는 필수적으로 기입하였음을 감안하면, 「고려사」기록의 연월은 실제 사건이 일어난 때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사료된다. 목종의 명에 의해 1007년 제주에 파견되었던 전공지는 1012년 5월(현종 3년) 사신으로 거란에 다녀왔고(고려사절요 권 3, 현종 3년 6월), 1014년 5월 21일(음) 사망하였다(고려사절요 권 3, 현종 5년 5월). 다만, 당시 전공지가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난 후, 왕에게 보고한 사료와 탐라성주 또는 구당사가 두 차례의 사건에 대해 조사한 사료 및 조정에 보고한 사료가 현재까지 남아 있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제주도에서 목종 5년 6월과 목종 10년에 각각 별개의 화산활동이 있었음이 확실하다. 다만, 목종 10년 사건의 경우, 월(月)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은 사건발생 보고를 받은 월과 조치가 완료되기까지 다소의 시간적 간격이 있었고, 「고려사」가 기전체로 편찬되어 사건에 대한 기록을 사실만을 간소하게 서술하는 과정에서 월(月)을 특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이 사건의 발생과 종결은 목종 10년에 모두 이루어졌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3.2 화산분화 현상 해석

일반적으로 화산은 분화 환경에 따라 그 양식과 분출물이 달라진다. 화산이 육상에서 분화하는 경우, 주로 용암·분석·화산재 따위의 물질들이 분화구를 통해 뿜어져 나온다. 반면, 바다·호수·빙하 등을 뚫고 화산이 분화하는 경우(수성폭발)에는 뜨거운 마그마(보통 800℃ 이상)와 차가운 물(20℃ 내외)과의 경계면이 과열되면서 증기폭발이 발생하며(Cas and Simmons, 2018), 물과 닿았던 마그마는 급격하게 냉각되면서 다양한 크기의 물질(화산재와 화산암괴)로 부서지고, 이들 물질이 쌓여 응회암층이 만들어진다. 분화환경이 다른 화산은 제주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 도처에 분포하는 분석구는 육상에서 분화한 화산의 좋은 사례이며, 일출봉과 수월봉을 구성하고 있는 응회암층은 수중화산분화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고려사」 및 「고려사절요」의 목종 5년 6월의 기록은 육상에서 분화한 화산이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3-2)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존에 있던 산의 네 군데에서 5일 동안 붉은 물(용암)이 솟구쳤고(山開四孔赤水湧出五日而止), 그 붉은 물이 기와돌이 되었다(其水皆成瓦石)는 기록의 내용은 육상분화를 뒷받침 해준다. 왜냐하면, 수중화산분화에서는 붉은 물(용암)을 목격하기 어렵고, 기와돌과 같은 암석도 만들어지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기록의 “瓦石(와석)”은 밧줄구조(ropy structure) 혹은 작은 용암로브(lava lobe)가 발달한 판상의 파호이호이 용암류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기록에는 붉은 물이 솟아나온 ‘산’의 위치나 지명이 적시되어 있지 않으나, 기록상의 ‘산’은 ① 한라산 정상 주변, ② 중산간지역, ③ 이전에 존재했던 산(분석구) 중의 어느 하나를 의미할 수 있다. 우리는 위 3가지 중에서 중산간지역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과거 제주사람들은 ‘산’ 이란 말보다는 ‘오름’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했고, ‘산’을 생활 근거지보다 해발이 높은 지역을 포괄적으로 지칭했음을 감안 할 때, 사람들이 모여 집촌을 이루었던 해안지역보다 해발이 높은 중산간지역에서 용암이 분화한 현상을 ‘산’으로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4군데에서 용암이 솟아났다는 표현은 ① 하나의 산에서 4군데 분화구를 통해 용암이 분화한 현상(중심분화), ② 4군데의 틈을 통해 용암이 분화한 현상(틈분화), ③ 한 장소에서 분화한 용암이 네 갈래로 나눠져 흐른 현상(용암류 분기) 중 어느 하나를 의미할 수 있으나, ②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 정리하면 제주도 중간간지역에서 하와이형 분화의 틈분화로 파호이호이 용암류가 유동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목종 10년의 기록은 수중화산분화 현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기록에 ‘바다(海)’라는 위치(장소)가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고, 그 현상에 대해서도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고(雲霧晦)’ 라는 표현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그러나, 지리적 위치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는 제주도의 행정구역이 조선 태종 16년(1416년)이 되어서야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목종 10년(1007년)에는 명확한 지리적 위치를 기술하기 곤란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목종 5년 6월의 기록에서 「고려사·고려사절요·세종실록지리지·증보문헌비고」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포함한 대부분의 문헌 간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 즉, 원서에는 없는 “瑞山湧出海中(서산용출해중) 또는 有山湧海中(유산용해중)”으로 바다(海)라는 문구가 추가되어 있다. 즉, 목종 5년 6월과 목종 10년 기록 모두 바다에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서술되었다. 그렇다면 목종 5년 기록에 ‘바다(海)’가 포함될 경우, 기록의 후단 문장(赤水湧出, 其水皆成瓦石)을 수중화산폭발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한지 여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뜨거운 마그마가 해저를 뚫고 바닷물과 만나게 되면 증기폭발이 일어나 마그마는 크고 작은 파편과 알갱이로 부셔지게 되고, 폭발력이 강할 경우에는 ‘증기+부서진 파편+물’이 뒤엉켜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멀리서 보면 흰 연기(수증기)와 검정색(부서진 파편)의 물기둥을 목격할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아이슬랜드 섯치섬(Surtsey Island)을 비롯하여 일본 주변의 해저화산 분화에서도 목격되고 있다. 따라서 수중화산분화로부터 붉은 용암이 5일 동안 솟아나왔다는 해석은 화산학적 관점에서는 합리성이 결여된다.

3.3 화산분화 위치

목종 5년 6월과 목종 10년의 기록에 대한 지질학적 해석 시도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되었다. Nakamura (1925)는 비양도에 화구(火口)다운 것이 몇 개 있고 더욱이 지질이 신선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목종 5년의 기록을 ‘비양도’로, 목종 10년의 서산(瑞山)은 집괴암(集塊岩)을 유출시킨 ‘군산’으로 추정하였다. 반면, Kawasaki (1928)는 유사시대의 기록에 의거 서기 1002년과 1007년 두 차례 분화가 있었던 것은 명백하지만 기록에는 모두 그 위치를 밝히고 있지 않아 두 차례 분화 위치에 대한 증거는 없다고 하였다. 1928~1931년까지 제주도의 지질조사를 수행한 Haraguchi (1930)는 기록에 의하면 유사시대에 분화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목종 10년에 분화한 서산(瑞山)의 위치를 정확히 결정할 증거가 없는 것이 유감이라 하였다.

한편, 비양도 화산암에 대한 절대연령 측정 결과는 K-Ar 절대연대 값으로 0.0434±0.0059 Ma (Miyake et al., 1993)와 Ar/Ar 절대연대 값으로 27±9 ka (Koh et al., 2008b)로 보고하고 있어, 비양도가 1002년 기록의 화산분화 위치에 해당할 가능성은 배제된다. 최근 Ahn (2016)은 역사서에 기록된 화산은 수성화산활동과 마그마성 화산활동을 모두 가지는 상당한 규모의 화산으로 분화연대가 3.8 ka 전 이후로 밝혀진(Ahn et al., 2015; Sohn et al., 2015) 송악산으로 추정하였다.

그동안 수행된 여러 연구 결과는 「고려사」를 비롯한 사서와 고문헌에 기록된 사건시기와 일치하는 소화산체의 위치를 특정하거나 신뢰할 만한 정보를 확인하지 못하였다. 이처럼 사건이 발생한지 1,000년이 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치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① 기록상의 구체적인 정보의 부족, ② 문헌 간 서술 내용의 불일치, ③ 지질학적인 심층연구의 부족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문헌은 물론 이전의 연구에서는 비양도, 가파도, 마라도, 군산으로 단정하거나 추정해왔을 뿐이다.

목종 5년 6월의 사건에 대한 문헌기록은 분화위치를 특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중산간지역에 분포하는 용암류 및 테프라층을 대상으로 자세한 암석학 및 연대학적 연구가 수행되어야 추정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한편, (3-3)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려사·고려사절요·세종실록지리지·증보문헌비고」의 목종 10년 기록에는 “耽羅(秦) 瑞山[탐라(주) 서산)]”으로 서술되어 있으나, 「동국여지승람·신증동국여지승람·탐라지·동국여지지」목종 10년 기록에 “今屬大靜縣(금속대정현)”의 문구가 추가되었다. 먼저 서산(瑞山)에 대해 살펴보면, 기록상의 “瑞山”은 위치나 지명 또는 특정한 산의 이름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상서로운 산 또는 상서스러운 산”을 뜻하는 말로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산(山)이 새롭게 생겨난 것을 복되고 길(吉)한 징조의 의미를 강조한 표현이다. 기록상의 서산과 동일한 한자 지명은 충청남도 서산(瑞山)이 있는데, 서산시는 서산의 의미를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조짐이 있는(상서로운)”으로 풀이하고 있다. Fujita (2002)는 제주도의 역사기록에 나오는 ‘서산’은 중국 역사서 「新唐書(신당서)」에 융기된 땅을 ‘경산(慶山)’으로 표현한 사례를 차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바다 가운데서 새로운 산이 솟아오른 것은 경이롭고 길할 징조라는 의미에서 “耽羅瑞山(탐라서산)”으로 서술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음으로 「동국여지승람·신증동국여지승람」에 “今屬大靜縣”의 문구가 추가된 의미를 살펴보자. 「대정여지도(1861)·청구도(1834)」를 보면, 대정현의 경계는 지금의 한경면 용당리-대정읍-안덕면-서귀포시 예례·중문·대천동을 잇는 지역(그림 1)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조선 태종 16년(1416년) 제주목·정의현과 함께 설치되었다. 「동국여지승람」이 각 지방에서 작성한 읍지(邑誌) 및 도지(道誌)를 기초로 편찬(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되었음을 감안하면, “今屬大靜縣(금속대정현)”이라는 문구는 서산이 대정현 역내(域內)에 존재하고 있음을 좀 더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기록상에는 ‘서산이 바다 가운데서 솟아나(瑞山湧出海中)’로 서술되어 있어 바다 가운데란 표현이 해안선에서 얼마나 떨어진 위치를 지칭하지는 알 수는 없으나, ① 해안에서 다소 먼 거리의 해상이거나, ② 해안에 인접한 바다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록에 나와 있듯이, 탐라인들이 목격할 수 있었고, 또 전공지가 산 아래에까지 가서 그 모양을 그렸다는 기록의 내용으로 볼 때, 해안에서 사람이 목측 가능한 거리로 추정된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화산분화는 ① 해안에서 2 km 내외의 거리에 위치한 바다이거나, ② 해안에서 1 km 이내 거리의 바다에서 화산이 분화하여 연륙화되었거나, ③ 수성화산체가 형성된 후 파도에 의해 삭박되어 수중에 존재할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정현 경계 내에 위치한 섬 및 해안에 인접한 소화산체 가운데 수중화산분화 특징을 지닌 것 중 ①에 해당하는 것은 차귀도와 와도, 형제섬을 들 수 있으며, ②의 경우는 송악산, 수월봉, 용머리를 꼽을 수 있다. ③의 경우는 제주도 서부해역의 해도에서는 문헌에 기록된 규모의 침수 화산체 지형은 확인되지 않는다.


Fig. 1. 
A historical map (Daedongyeojido, 1861) that shows the boundary of Daejung-hyeon, Biyangdo, Hyeongjaeseom, and Songaksan (Source: Jeju National University Museum).

이와 같은 점들을 종합할 때, 대정현 일대에 분포하는 목종 10년 분화된 화산체로 차귀도와 와도, 송악산, 형제섬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차귀도와 와도는 Brenna et al. (2015)의 연구에서 당산봉 형성과 유사한 40만 년 전에서 25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또한, 송악산의 경우는 Ahn et al. (2015), Sohn et al. (2015), Yoon et al. (2017)의 연구에서 약 3천 7백 년 전에 분화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와 같은 점을 감안하면 차귀도, 와도, 송악산은 목종 10년 분화 대상에서 배제되며 형제섬일 가능성이 높다(그림 2). 그러나, 아직까지 형제섬에 대한 지질학적 연구가 미흡한 상태이므로 향후 상세 연구가 요구된다. 이와 더불어 2015년 표선 앞바다에서 탐라해저 분화구가 발견된 사례가 있음을 감안할 때, 제주도 주변 해역에 대한 정밀 해저지형조사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Fig. 2. 
(a) Location and photographs of (b) Hyeongjaeseom Islet and (c) Songaksan, estimated to be formed from the volcanic eruptions recorded in the 10th year of King Mokjong of Goryeo Dynasty.


4. 결 론

역사서 및 고문헌 21편에 고려 목종 5년(1002년) 6월과 목종 10년(1007년)에 일어난 화산분화에 관한 기록과 1454년에서 1708년 사이의 지진 및 해일 등에 관한 4편의 문헌기록을 화산학적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본 연구에서 검토한 21편의 문헌에 수록된 화산분화에 관한 기록의 원사(原史 또는 原書)는 「고려사(1451년)」 및 「고려사절요(1452년)」이며, 그 외의 문헌들은 원사를 전재(前載)하는 과정에서 오기(誤記)와 함께 저자의 사견이 서술되어 있어 이들 문헌을 인용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서산(瑞山)의 위치를 “지금은 대정현에 속한다(今屬大靜縣)”는 문구가 추가된 것은 1416년(조선 태종 16년)에 설치된 행정구역 체계(제주목, 대정현, 정의현)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려 목종 5년 6월의 기록은 육상분화로 해석되며, 그 위치는 특정할 수 없으나 기록의 내용으로 볼 때, 하나의 산에서 네 군데 구멍이 열려 용암이 분화했다기보다 중산간지역에서 틈분화(fissure eruption)가 일어나 용암이 네 군데서 솟아오른 현상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려 목종 10년의 기록은 수중화산분화 현상을 잘표현하고 있으나, 위치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당시 사람이 목격할 수 있었고, 또 전공지가 산 아래에까지 가서 그 모양을 그렸다는 점, 「동국여지승람」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서산(瑞山)의 위치를 “지금은 대정현에 속한다”로 서술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화산분화 위치는 현재의 형제섬 또는 수중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고려 목종 10년 기록의 “瑞山(서산)”은 위치나 지명 또는 특정한 산의 이름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산(山)이 새롭게 생겨난 것으로 복되고 길(吉)한 징조의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 해석된다.

고려시대 제주도의 지진이나 해일 기록은 없어 목종 5년 6월과 10년의 화산분화와 연관시킬 수 없었으나, 1707년 10월 29일~1708년 1월 21일까지 9차례의 지진과 한 차례의 해일은 당시 일본에서 발생한Hoei 대지진(宝永地震)과 연관된 것으로 해석된다.


Acknowledgments

이 연구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및 제주특별자치도 한라산연구부 자체 연구사업의 일환으로 수행되었습니다. 논문 작성과정에 많은 자문을 주신 제주대학교박물관 강은실 선생님과 항공사진을 제공해 주신 정희준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논문의 심사과정에서 건설적인 비평과 유익한 조언을 해주신 익명의 심사위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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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Yoon, W.S., Yoon, S.H., Sohn, C.W., and Sohn, Y.K., (2017), Records of palaeo-sea level and eruption duration in a coastal tuff ring, Jeju Island, Korea, Terra Nova, 29, p52-60.
25. Yun, S.H., (2013), Volcanological Interpretation of Historical Eruptions of Mt. Baekdusan Volcano, Journal of the Korean Earth Science Society, 34, p456-469, (in Korean with English abstract).

Appendix 1. Volcanic events recorded in the 5th (1002 AD) and 10th (1007 AD) of King Mokjong of the Goryeo Dynasty.


Literature Descriptive Record
高麗史(1451AD) ○ 卷55 志 卷第九 五行三
穆宗五年六月耽羅山開四孔赤水湧出五日而止其水皆成瓦石.
十年耽羅瑞山湧出海中遣大學博士田拱之往視之耽羅人言山之始出也雲霧晦冥地動如雷凡七晝夜始開霽山高可百餘丈周圍可四十餘里無草木烟氣羃其上望之如石硫黃人恐懼不敢近拱之躬至山下圖其形以進
○ 列傳 卷第七 田拱之
田拱之靜州靈光縣人成宗朝登進士科穆宗末授大學博士時耽羅秦瑞山湧出海中遣拱之往梘耽羅人言其形狀奇異可懼拱之躬至山下圖其形以進
高麗史節要(1452 AD) ○ 卷之二 穆宗宣讓大王
穆宗五年六月耽羅山開四孔赤水湧出五日而止其水皆成瓦石
穆宗十年耽羅秦瑞山湧出海中遺大學博士田拱之往梘之耽羅人言山之始出也雲霧晦冥地動如雷凡七晝夜始開霽山高可百餘丈周圍可四十餘里無草木煙氣冪上望之如石硫黃人恐懼不敢近拱之躬至山下 圖其形以進
世宗實錄地理志(1454년) ○ 151卷 地理志 全羅道 濟州牧
靈異高麗穆宗五年壬寅六月耽羅山開四孔赤水湧
十年丁未有山湧出海中耽羅以聞王遣太學博士田拱之往驗之耽羅人言山之出也雲霧晦地動如雷凡七晝夜始開霽山無草木烟氣羃其上望之如石流黃人不能進拱之躬詣山下圖其形以進
東國痛鑑(1485년) ○ 東國通鑑 卷15 高麗紀
高麗穆宗十年丁未年有山于耽羅海中耽羅人言山之始出也雲霧晦暝地動如雷凡七晝夜始開霽山高可百餘丈周可四十餘里無草木烟氣冪其上望之如石硫黃遺大學博士田拱之往梘之拱之至山下圖其形以進
東國與地勝覽(1486년) ○ 古跡, 瑞山
高麗穆宗五年六月有山湧海中山開四孔赤水湧出五日而止其水皆成瓦石
十年瑞山湧出海中遣太學博士田拱之往觀之人言山之始出也雲霧晦暝地動如雷凡七晝夜始開霽山可百餘丈周可四十餘里無草木烟氣冪其上望之如石硫黃人恐懼不敢近拱之躬至山下圖其形以進今屬大靜縣
新增東國與地勝覽(1530년) ○ 全羅道 濟州牧 古跡條, 瑞山
高麗穆宗五年六月有山湧海中山開四孔赤水湧出五日而止其水皆成瓦石十年瑞山湧出海中遣太學博士田拱之往觀之人言山之始出也雲霧晦暝地動如雷凡七晝夜始開霽山可百餘丈周可四十餘里無草木烟氣冪其上望之如石硫黃人恐懼不敢近拱之躬至山下圖其形以進今屬大靜縣
南槎錄(1601년, 金尙憲) 桉地誌飛揚島在州西海中州牧羔于此云高麗穆宗十六年有山湧海于耽羅海中者卽此島云
芝峯類說(1634년, 李睟光) ○ 卷2 地理部, 山
漢挐山一名圓山在濟州以峰上皆平故名世傳登其山頂則可瞰老人星其大如燈山頂積雪盛夏不消有大池旱不竭輿地勝覽曰卽圓嶠山也然則以漢挐爲瀛洲山者非也漢挐西北別有一山名瀛洲山故謂濟州爲東瀛洲又瑞山高麗時自海中湧出周四十里山無草木今在大靜縣云
耽羅志(1653년, 李元鎭) 瑞山高麗穆宗五年六月有山湧海中山開四孔赤水湧出五日而止其水皆成瓦石, 十年瑞山湧出海中遺太學博士田拱之往視之人言山之始出也雲霧晦冥地動如雷凡七晝夜始開霽山可百餘丈周圍可四十餘里無草木煙氣冪上望之如石硫黃人恐懼不敢近拱之躬至山下圖其形以進今屬大靜懸
東國與地志(1656년, 柳馨遠) 瑞山高麗穆宗五年六月有山湧海中山開四孔赤水湧出五日而止其水皆成瓦石十年瑞山湧出海中遺太學博士田拱之往視之人言山之始出也雲霧晦冥地動如雷凡七晝夜始開霽山高可百餘丈周圍可四十餘里無草木煙氣冪其上望之如石硫黃人恐懼不敢近拱之躬其至山下圖其形以進今屬大靜懸
南遷錄(1679년, 金聖久) 瑞山高麗穆宗十年湧出海中遺大學博士田拱之往視之人言山之始出也雲霧晦冥地動如雷凡七晝夜始開霽山可百餘丈周圍可四十餘里無草木煙氣冪上 望之如石硫黃人恐懼敢近 拱之躬至山下圖其形以進今屬大靜懸
南宦博物(1702년, 李衡祥) 竹島南有蓋波 水路三十里 周四十里 無草木多茂草 爲私馬場 高麗 穆宗 五年六月 有山湧海中 山開四孔赤水湧出五日而止 皆成瓦石, 十年 瑞山 湧出海中 遺大學博士 田拱之往梘之 人言 山之始出也 雲霧晦冥 地動如雷 凡七晝夜 始開霽山可百餘丈 周圍可四十餘里 無草木 煙氣常冪其上 望之如石硫黃 拱之 不敢近 躬至山下 圖形以進 輿地誌曰 今屬大靜懸 疑是此島 而南槎錄 而濟州之 飛揚島當之 飛揚之周不滿十里 且牛島之外 元無三四十里可回之島 麗史所圖四十餘里者 非此無可彷彿 而古老吏民無有傳說堪可埋沒
天東象緯考(1708, 崔天壁) ○ 第2卷 山湧出占
穆宗十年丁未六月耽羅瑞山湧出海中遺大學博士田拱之往視之耽羅人言山之始出也雲霧晦冥地動如雷凡七晝夜始開霽山高可百餘丈周圍可四十餘里 無草木煙氣冪上望之石硫黃人恐懼不敢近 拱之躬至山下圖其形以進
耽羅地圖幷序(1709년, 李奎成 等) 瑞山 卽 飛揚島 穆宗五年 湧出海中 周圍 五六里 高百余尺 有四峯土石 皆赤 褐無樹木.
星湖僿說(1740년경, 李瀷) 今濟州之飛颺島一名瑞山在州之西北髙可百餘丈圍四十餘里始也雲霧晦冥地動如雷凡七晝夜湧出海中無草木望之如石硫黄(이하생략)
增補文獻備考(1770년) ○ 卷之十, 象偉考, 山水異
高麗 穆宗 五年 六月 耽羅山 開四孔 赤水湧出 五日而止 其水皆成瓦石, 十年 十月有山湧出干 耽羅海中 雲霧晦冥 地動如雷者 凡七晝夜 始開霽 山高可百餘丈 周圍可四十餘里無草木煙氣冪其上望之如石硫黃遺太學博士田拱之圖其形以進謂之瑞山
濟州邑誌, 濟州大靜旌義邑誌(1793년) 瑞山高麗穆宗五年六月山湧海中山開四孔赤水湧歲五日而止其水皆成瓦石十年瑞山湧出海中遣太學博士田拱之往視之人言山之始出也雲霧脢暝地動如雷凡七晝夜始開霽山可百餘丈周圍可四十餘里無草木烟氣冪其上望之如石硫黃人恐懼不敢近拱之躬至山下圖其形以進今屬大靜縣
耽羅誌草本(1843년, 李源祚) 牛島, <전략> 一夜轟雷 ○雲開霧廓忽 湧出瑞山 新西飛王庭溟○
飛揚島, 在州 西六十里 水路 五里 周十里 多箭竹, 續志 云 在州西 明月鎭下, 高麗 穆宗十六年 有山湧于 耽羅海中者 卽此島云 舊有黑圈令廢
大靜郡古誌(1899년) 瑞山在縣東二十五里高麗穆宗十年有山湧出海中遣太學博士田供之往視之山之始出也雲霧晦暝地動如雷七晝夜始開霽高可百餘丈周可四十餘里無草木煙氣羃其上望之如石硫黃人恐懼不敢近供之躬至其下圖其形而進號瑞山今稱軍山按州境亦有瑞山湧出在穆宗五年十年之間山有再湧之事亦可異也
海東歷史(조선후기, 韓致奫) ○ 續篇 第11卷 地理考 十一, 高麗 二
瑞山: (和漢三才圖會)東國通鑑云。高麗穆宗十年。有山湧出耽羅海中之南。其國人言。山之始出也。雲霧晦暝。地動如雷。凡七晝夜。始開霽。山高可百餘丈。周圍可四十餘里。無草木煙氣羃其上。望之如石硫黃。於是人高麗太學博士 田拱之見之。供之至山下。圖其形以進。謹接山在㫌義縣。